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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기록/독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여행, 작센하우젠 수용소 - 끔찍했던 곳에서 끊임없이 반성하고 노력하는 장소로 바뀌다.

by 러블리 앨리스, 호텔&여행 블로거 2021.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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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대인 수용소는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다. 독일 제 3제국 최대 규모의 수용소로도 잘 알려져있따. 베를린에서 조금 떨어진 작센하우젠은 나치가 만든 여러 수용소중 하나로, 1936년 올리핌 게임을 유지하면서 "반사회적인 요소"를 몰아내기 위해 최초로 설립된 곳이다. 주로 나치 체제에 반하는 정치범들을 수용한 곳이라고. 베를린 시내 중심에서 전혀 가깝지 않은, 오라니엔부르크 (Oranienburg)까지 이동해야 방문할 수 있는 작센하우젠. 하지만 베를린까지 와서 작센하우젠을 안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길치인 나는 먼길을 떠나기로 했다.

 

 

작센하우젠까지는 베를린에서 대중교통으로 이동시 얼추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물론 길치인 나에게는 플러스 1시간 더해야 했다. (중간에 환승을 잘 못함) 보통 작센하우젠은 투어가 따로 있어서 투어 신청을 하면 베를린 시내에서 투어버스를 타고 이동도 가능하지만, 당시에 투어시간이 내 개인 시간과 좀 잘 맞지 않아서 그냥 혼자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 작센하우젠 가는 길; 구글지도로 보기

 

 

arbeit macht frei = "Work makes one free" 노동이 자유케 하리라는 의미다. 그냥 수용소에 들어오면 잔말말고 일하라는 뜻

작센하우젠 수용소 Memorial and Museum Sachsenhausen

- 주소: Str. der Nationen 22, 16515 Oranienburg, 독일 구글지도 보기

- 연락처: +49-(0)3301-200-200

- 운영시간: 매일 오전 8시 30분 - 오후 6시

- 공식 홈페이지 보기

p.s. COVID19로 인해서 2021년 3월 21일부터 휴무

 

 

나는 S Mess Nord/Icc에서 출발했다. 카이저댐 역도 있었지만 그때 가장 빠르게 출발하는 것이 이쪽 역이었기에 이쪽에서 출발. 구글맵이 워낙 잘 되어있으니 딱히 길을 모르는 초행길이라도 과감히 이동할 수 있었다.

 

 

중간에 환승해야 하기에 정식 차리고 이동하면서 구글맵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하지만 환승장소를 착각해서 그대로 타고 갔어야 했는데 나는 내려버렸다. 다음 열차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지 않는... 열차였고 그것도 모르고 무작정 다음 열차를 타고 한참을 돌아가버렸다. 결국 여기서 30분 이상 시간을 소비해버려서 나는 예상시간보다 한시간 더 늦게 작센하우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최종 목적지인 S Orainenburg역. 이곳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작센하우젠에 갈 예정.

 

 

배고파서 버스 기다리는 동안 맥도날드에서 간단하게 허기 해결완료.

그리고 버스가 와서 탑승했는데 이 와중에 또 반대편 버스에 탑승해버려서... 다시 하차한 후 다음 버스를 한참 기다린 후 다시 맥도날드로 돌아와서 다시 내가 타야할 버스를 한참 기다린 후 작센하우젠으로 갈 수 있었다.

 

 

오가는 버스 텀이 좀 길다.

버스에 탑승하고 알게된 사실. 이렇게 작은 전광판이 있어서 나처럼 독일어 모르는 사람도 충분히 다음역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이 버스를 타고 편안하게 작센하우젠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워낙 외진 곳이라 그런지, 딱 사람들이 사는 마을 정도일 뿐, 대도시 모습은 아니었다. 다행이라면 구글맵의 안내대로 버스가 오고가고 하지만, 문제는 버스의 도착 간격시간이 굉장히 긴 편이었다. 그러므로 시간에 맞춰서 가길 꼭 추천한다. 안그러면 어정쩡하게 햇빛에 노출된 채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한참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른다.

 

 

유독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정류장이 작센하우젠 기념관이었다. 그에 맞춰 나도 따라 내렸다.

한적한 전원마을인 이곳에 기념관이 있을 줄은 생각못했는데. 너무 한적하고 고요해서 이곳에 살면 힐링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평온한 마을에 아픈 기억의 기념관이 있다니!

 

방문자 센터 도착

드문드문 있는 벽을 따라 걷다보면 기념관 입구가 보였다. 평일이었음에도 꽤나 사람이 많아서 전면전을 찍기 어려웠으나 이렇게 입구라도 찍어서 인증샷을 남겨보기로 했다.

 

 

입구의 건물은 이렇게 간단한 전시와 자료들 그리고 빨간색 데스크가 있었다. 다행히 내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 입장료: 무료 

- 가이드 투어 참여 원할 경우 사전에 미리 신청하기. 단, 사전 신청이라는 것이 성수기에는 무려 4개월전에 신청해야 함. (역시 독일답다) 그리고 만 14세 이상부터 가이드 투어에 참여 가능하다. ▶ 자세한 설명 여기서 보기

- 오디오 가이드: 성인 3유로/ 그룹은(최소 10개 이상) 2유로

 

입장 후 주의사항 

1. 흡연 금지 

2. 플래시 사용 금지 

3. 기타 물건/ 전시품에 손대지 않기 

4. 12세 미만 아동은 이곳의 기념관, 박물관, 옛화장터등을 방문하지 말것

다른 주의사항이야 익숙하고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주의사항이지만, 4번의 주의사항은 꼭 잊지 않도록 하자. 어린자녀와 함께 베를린에 와서 역사공부한답시고 이곳에 방문하지 마시길. 이곳은 12세 이상만 입장하는 것을 안내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런지 오디오 가이드 역시 성인 기준으로 요금을 안내하고 있다. 단, 흔히 말하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견학 프로그램은 이곳에서 진행 가능하다. 물론 규정이 있으니 그 규정에 따라 이곳을 방문해야 한다. 

 

 

간단한 자료등은 다양한 언어로 볼 수 있었다.

 

 

개인 사물함도 있으니 필요하면 이용하시길.

 

 

수용소 내부로 출발.

 

 

수용소 내부로 들어가기 전 보이던 철문에 적힌 독일어.

노동이 너를 자유케하리라. 

 

 

이곳은 생각보다 꽤 넓다 = 많이 걸어야 한다.

생각보다 부지가 엄청 넓었고 그늘막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니,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어 주구장창 걸어야만 내부 캠프를 둘러볼 수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저 끝에 보이는 건물이 작아보일 만큼 정말 넓었다. 이곳을 방문한다면 편한 운동화는 필수. 나는 오디오 가이드도 신청안하고 그냥 내 발길 닿는대로 걷기로 했다. 그만큼 이곳을 이해할 수 있는 정보는 부족하지만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 각 건물에 대한 설명을 표지판과 설명판으로 보충할 수 있었다.

 

 

하. 걷고 또 걷고...

 

 

곳곳마다 길을 잃지 않도록 전체적인 구조에 맞는 건물 위치를 표시해두고 설명도 간략하게 해두었다. 지금 이곳은 1936년-1945년 강제수용소에서의 의료행위를 시행하던 곳이자 동시에 인체실험도 했다고 한다. 특히 히틀러를 살해하려다가 잡힌 이들이 심각한 상태로 이곳에 끌려왔다고. 타 국가에서가 아닌 가해를 한 국가에서 자신의 조상들이 어떻게 가해했는지 이렇게 상세하게 적어둔 것은 나에게 낯선 것이었다.

 

 

Pathology Building and Cellar Mortuary 병리학 건물과 지하실 빈소 

1941년에 지어진 병리학 건물에서는, 사망하거나 살해된 사람들의 시신에 부검이 행해졌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이 건물 안으로 혼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처음에 이 건물 앞에 당도했을 때 "Pathology"이라는 단어를 몰라 사전 찾아가며 이 건물의 기능(?)을 알려고 했는데 이 건물이 어떤 건물인지 알고 난 뒤에는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 이외의 다른 4명의 무리는 과감히 들어갔다가 빠르게(??) 나오는 모습을 보고 더더욱 안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실제 수용소 건물 위치를 이렇게 표시

이렇게 길죽한 작은 돌멩이가 있는 곳은 그 당시에 수용소의 건물이 있던 장소를 나타낸다. 생각보다 꽤 길고 컸던 것을 보면 제법 많은 억울한 이들이 이곳에 있었을 듯 싶다.

 

 

약 40m 높이의 기념비

 

한참을 걸어서 기념비탑에 도착.

저 탑에 표시된 빨간색 삼각형은 기념비가 동독시절에 세워진 것이니 사휘주의자 희생자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때는 그게 맞는 것이었을지도. 차후 다양한 신념을 가진 하지만 희생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다양한 모양과 색상이 이 기념탑에 세워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Execution Trench

이 곳에서 저항세력, 양심적 병역거부자, 나치 특별재판소에 의해 선고된 사람들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직접 아래로 내려갔는데, 생각할 수록 좀 끔찍했다.

 

 

Site of Commemoration "Station Z" for the Victims of the Concnetration Camp

이곳은 그 당시 화장터인데, 이 근처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Soviet Special Camp Museum 소비에트 특별 수용소 박물관

1945~1950년 사흐센하우젠의 소련 특수부대 제7호 / 제1호 1945년에서 1950년 사이에 소련 비밀 경호국은 구 강제 수용소의 핵심 지역에 총 6만 명의 사람들을 수용했다. 2001년에 지어진 전용 전시공간과 남아있는 두 개의 원래의 석조 막사에는 특수 캠프의 역사와 수용자들의 운명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 중 12,000명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었다.

 

 

"Sonderlager" of the Concentration Camp / Zone II of the Soviet Special Camp

1941년에 세워진 강제수용소인 Sonderlager다. 특수수용소라고 한다.

 

 

곳곳에 남은 터들을 최대한 보존하고 있었다.

 

 

PRISON 감옥

1936년에 감옥 노동으로 건설되어 게슈타포(Gestapo, 독일 나치스 정권하의 정치경찰)와 수용소 당국에 의해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된 유명 인사들뿐만 아니라 수용소 규율 위반으로 SS에 의해 처벌된 사람들을 억류했다. 실제 이곳에서 어떤 사람이 떠났는지 사진으로 글로 남겨두기도 했다. 몇몇 이들은 이곳에 애도의 표시를 남겨두기도 했다. 

 

 

 

당시 열악했던 환경이 느껴지던 캠프

수감자들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던 수용소 내부 모습을 가장 가깝게 전시해둔 곳이다. 그들이 실제 사용한 화장실부터 침실까지. 사실 침실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빽빽하게 침대들이 있었다. (침대가 있는 침실내부로는 입장 불가.) 

1936년 여름에 문을 연 작센하우젠 수용소는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감금되었던 곳이다. 노예 노동은 물론이고 이들에게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굶주리고 고된 일에 노출되며 제대로 잠도 잘 수 없었던 곳. 아주 오랜된 이곳이 세월이 흘러 낡은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도 낡았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 이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환경 자체가 위생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끔찍하게 비위생적인 환경에서는 전염성 질병이 계속 발생했다고. 

 

공동생활 공간 중 우리로 치면 거실 정도에 해당하는 곳에서 단체 견학온 이들의 가이드(또는 담당자)의 설명을 이곳에서 들으며 진지하게 이곳을 경험하고 있었다. 

 

내 나름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걸으며 읽으며 해석하며 이 캠프를 둘러보고 잠시 

 

 

Café in the New Museum 박물관 내의 작은 카페에서 잠시 휴식

카페에 들러서 다리도 쉬고 당분도 보충했다. 3월의 날씨지만 햇살이 강했던 하루이기도 했고 출발하고나서부터 환승 실수로 버스를 잘못타는 실수로 헤매다 여기에 도착해서 부지런히 돌아다녔으니 피곤이 몰려오기도 했다. 카페에 입장해서 킨더와 사과쥬스를 시켰는데 내 표정을 보시더니 카페주인장이 물어본다.

"많이 피곤한가봐. 여기 다 둘러봤어? 어땠어?"

내 반응이 사뭇 궁금 한 것 같은 그의 질문이었다.

"신기하고 놀라웠어요. 부지도 크고 이 모든 것을 기록해두고 그대로 공개하고. 좋은 경험이었어요."

웃으면서 킨더와 사과쥬스를 내주셨다. 테이블에 앉아 시원하게 사과쥬스를 마시고 킨더를 와구와구 씹어먹으며 나는 이제 돌아가야 할 길을 걱정해야했다...... ^^;

 

 

다 둘러보고 난 뒤....

이곳을 둘러보면서 사진에 다 담지 못했던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곳을 걸을 때마다 이렇게까지 자국의 문제를 드러내고 틈만나면 사과하는 독일의 모습은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지금 나에게는 신기할 정도였다. 어떻게 그들이 유대인과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가했는지 낫낫히 밝히고, 그것을 끊임없이 교육시키는 모습. 그것이 지금의 유럽연합의 중심에 독일이 있음에도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이유로 보인다. (유럽연합에 분담금을 가장 많이 내는 국가가 독일임과 동시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는 일본은 당연하고 우리 역시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보고 후대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여기서 배우게 되었다.

 

▶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일본에게 한 말: "메르켈 총리가 일본을 떠나는 날까지 할 말을 다했다. 일본 야당과 대화에서 군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유튜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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