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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여행

안동의 곳곳에서 안동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소주, 간 고등어, 하회 마을, 하회탈. 이렇게 나열한 4가지는 내가 "안동"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연관되는 단어들이다. 딱 이 정도. 그래서 나는 이번 안동 취재 투어가 설렜다.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안동을 알 수 있는 계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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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안동까지 버스로 2시간 소요(편도)

 부산에서 안동까지 버스로 이동 시 예상 소요 시간은 편도로 2시간 30분. 하지만, 부산에서 안동으로 오고 가며 실제 소요된 시간은 2시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1시간 50분) 마침 차가 막히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고속도로의 상황이 이전보다 무척 좋아졌기 때문일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나는 여행의 시작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Canon | Canon EOS Hi | 1/800sec | F/3.5 | 18.0mm | ISO-100

▲ 사진의 왼쪽이 뿌연 이유는... 카메라에 뭔가 묻어있어서;;;; ▲


"아! 맞다! 장갑!"

 새벽 택시를 타며 부산고속버스터미널로 이동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장갑을 챙기지 않았던 것. 사실 이틀 전 손을 다쳤던 데다가, 추운 겨울 카메라를 들고 다닐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아... 왜 미리 장갑을 챙겨놓지 않았을까" 스스로에게 비난도 해보았다. 그런데 무슨 소용이 있으랴. 제발, 본격적인 여행 떠나기 전에 장갑을 미리 살 수 있기를 기대했다. 다행히, 예상보다 빨리 안동에 도착했기에, 나는 안동 버스 터미널에서 안동 역으로 가는 길, "중앙 신시장"에 들러 장갑을 구매했다.


"아! 그거 2천 원. 그런데 그거 사면 빨리 잊어버려! (왜요?) 싸니까 !!! 하하하하 싸니까 사람들이 쉽게 생각해서 그냥 잊어버려. 그런데 아가씨한테도 별로 안 어울려. 할머니 디자인이야~! 그냥 이거 사. 원래 5천 원인데 4천 원에 줄게. 에이, 그건 영~ 아니다!"

 가장 저렴해 보이는 보라색(누가 봐도 디자인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그런 디자인) 장갑을 고르는 나에게  주인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다른 검은색 장갑을 권해주었다. 5천 원 짜리 검은색 장갑을 1천 원이나 깎아주는 통 큰 면모를 보여주었던 아주머니의 말을 나는 사실 다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 장갑은 본래 가격이 4천 원 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웃으면서 살근한 말을 건네고 다른 손님들에게도 넉넉한 웃음을 보이며 응대하는 모습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4천 원에 구매한 검은색 장갑은, 내가 안동에서 구매한 것 중에서 가장 잘 구매했다고 자부하게 되었다.


 나는 모두 모이는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안동 역에 도착했다. 약간 시간이 남은 나는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경상권)"에서 안동의 안타까운 문화재 중 하나로 손 꼽은 오층 전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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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역 바로 앞에 있던 오층 전탑

 통일 신라 시대에 유행했던 삼층 석탑. 하지만 그런데도 안동에는 전탑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전탑 중에서 현재 살아 남아있는 오층 전탑은 안동역 광장에서 오른쪽 (지금은 주차장)에 있다. 나에게 익숙했던 삼층 석탑과 달리 타일 텍스쳐가 그대로 살아있는 전탑은 그 자체로 아주 예뻤다. 오층 전탑 근처에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벚나무가 있다. 오랜 사랑의 징표로 상징되는 벚나무에 얽힌 사연은 요즘 말로 "이거 실화임?!"이라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올 만큼 드라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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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옆 모진 세월에 살아남은 법흥동 7층 전탑

 주재 기자부터 일반 블로거 기자까지 모두 안동역에서 모였다. 다 같이 이동한 곳은 법흥동 7층 전탑. 

"다 왔습니다.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해설사님의 안내에 따라 버스에 내렸다. 나는 몇 걸음 걷는 순간 탄식이 바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속된 말도 짜증이 솟구쳤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7층 전탑은 기찻길과 너무 가까웠다.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기찻길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그런데도 그 세월을 견뎌낸 법흥동 7층 전탑. 물론 온전히 버텨낸 것은 아니다. 지금 법흥동 7층 전탑은 15도의 경사로 기울어진 상태. 이 안타까운 상황에서 '조만간 기찻길이 옮겨질 것'이라는 해설사님의 말을 들은 것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다. 


 법흥동 7층 전탑만큼 안타까운 사연이 묻어 나는 고성 이씨 종택으로 향했다. 법흥동 7층 전탑에서 조금 걸어 고성 이씨 종택인, 임청각의 대문에 당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된 임청각은 그 이후 언론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관련 기사) 임청각 대문 앞에는 ""국무령 이상룡 선생"이라는 간판을 볼 수 있다.


 임청각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살림집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곳이다. 꽤 큰 규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제 시대의 보복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일제는 독립군을 많이 배출한 안동을 관리 해야 했다. 일제는 임청각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부설했고 임청각의 여러 집이 제거되어야만 했다. 그로 인해 법흥동 7층 전탑 또한 그 여파를 고스란히 견뎌야 했음은 물론이다.


 

 

 

Canon | Canon EOS Hi | 1/1250sec | F/3.5 | 18.0mm | ISO-100


우리가 새롭게 주목하게 된 이곳은 임청각

 단순한 관광 장소가 아닌, 현재에도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 임청각이다. 그러니, 너무 소란스럽지 않은 선에서 우리는 조용히 둘러보았다. 임청각의 대문에서 약간 오른쪽 위에는 "군자정"이 있다. 임청각의 별당채인, 군자정 내부는 신발을 벗는다면 잠시 들어가서 둘러볼 수 있게 되어있다. 군자정 내부에는 국가에서 내려준 훈장과 당대 독립 활동을 했던 인물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군자정 내부를 둘러보고 바깥으로 나왔을 때 군자정의 뷰는 상당히 멋졌을 것이라고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군자정이 다소 높은 곳에 있어서, 멀지 않은 곳에서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좋은 장소였다. 물론, 지금은 그 멋진 시야를 기차 길이 완벽하게 막았지만.




 

Canon | Canon EOS Hi | 1/1000sec | F/3.5 | 18.0mm | ISO-100


원이 엄마 이야기를 담아낸 월영교에서.

 임청각에서 멀지 않은 월영교로 이동했다. 차가운 강바람을 바로 느낄 수 있는 곳이어서, 부산 토박이인 나는 월영교에서의 바람이 무척 추웠다. 온몸을 꽁꽁 동여매고 해설사님을 따라 이동했다. 국내에서 목책 인도교로서는 가장 긴 길이를 자랑하는 월영교는 커플들에게 인기가 많은 장소다. 경관이 좋아서 커플에게 인기가 많을 것이라는 나의 추측은 맞지 않았다. 사실 이 다리와 함께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안동은 안동댐을 만들면서 오래되지만, 보존 가치가 뛰어난 고택을 옮기고,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거주를 옮겨야 했다. 안동 정상동을 택지개발 하기로 했고, 이름 모를 무덤을 옮기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미라와 함께 400년이 넘은 고성 이씨의 무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누군가의 사랑 편지도 함께 있었다. 그 편지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지역사회에 큰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다. 편지 내용은 30대 초반의 남편을 먼저 보내야 했던 아내의 남편 사랑을 담은 편지, 러브레터였다. 아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짚과 함께 엮어 미투리(짚신과 비슷한,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신발)를 만들었다. 당시 미투리를 만들어 이불 밑에 넣어두면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그리고 남편이 죽고, 아내는 자신의 편지와 미투리를 남편의 무덤에 같이 묻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고성 이씨 이응태이었고, 부인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아내를 원이 엄마라고 부른다.


 이 슬픈 사랑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아 월영교가 건축었다. 그리고 안동을 대표하는 컨텐츠 중 하나가 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커플이 월영교와 그 테마길을 걸으면 적어도 400년 동안 커플들의 사랑이 이어진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 월영교를 커플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있나.


 월영교 근처에는 낯선 이방인인 나의 눈에 볼거리가 많았다. 수몰 지역에 있었던 안동 석빙고도 이곳으로 옮겨졌고, 선성협객사, 오래된 고택들 또한 이곳으로 옮겨 놓아 전통문화체험장을 만들 수 있었다.





 

Canon | Canon EOS Hi | 1/30sec | F/3.5 | 18.0mm | ISO-640


한국의 탈이 이렇게 다양했구나 @하회 세계탈 박물관

 안동 하회 마을 입구에는 안동 하회 세계 탈 박물관이 있다. 1995년 9월에 개관한 이 박물관 내의 모든 탈은 김동표 관장(하회별신굿탈놀이 이수자이자 탈 제작자로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이 한국탈 19종 300점, 35개국의 500점 등을 직접 모았다. "탈 MASK"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개별적인 개성이 있겠지만, 탈 마다 그리 큰 차이가 있을까. 하는 내 생각은 세계탈박물관에서 보기 좋게 깨졌다. 국내 탈 모양은 지역별로 완전히 달랐다.(전혀 비슷한 모습이 없는 것도 있었다) 이게 우리나라 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색적이거나 처음 보는 한국 탈도 많았다. 각 국에서 모아진 탈 중에는 정말 표정이 살아있는 듯해서 놀라웠다.  혹시, 박물관의 영업이 종료되고 난 이후, 모든 불이 꺼지고 나면 각 탈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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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을 대표하는 마을, 하회마을

 사실 이번 취재 일정에는 하회마을을 방문할 계획이 없었다. 모든 일정이 다 좋았음에도 하회마을을 한 번도 방문해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다음에 혼자 와서 꼭 영모각에 들러야겠다고 다짐도 했다. 그런데, 다행히 안동 취재 투어 전체 일정이 생각보다 늘어지지 않아서 하회마을에서 약 1시간가량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완전 기분이 좋아졌다.


 하회마을은 오래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많이 보존되고 있다. 오랜 전통이란 개인이 갈고 닦아 보존하던 것에서 새로운 인식의 흐름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 문화가 소중하고, 세계적인 유산으로 전혀 손색없다는 그 인식과 더불어, 우리가 지키고 보존하자는 그 생각의 흐름이 바뀌고 나서 안동 하회마을은 더욱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그로 인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기쁜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안동 하회마을 내의 고택들은 모두 철저한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구조적으로 건축되었다.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하는 자연과 만물의 이치, 이 집을 거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사회적인 의식의 근간인 유교 사상. 이 모든 것이 함축된 과정에서 나오는 건축의 아름다움은 딱 아는 만큼 보였다. 그러므로 안동 하회마을에서 해설사님의 존재가 절대적인 이유가 된다.






충효당내의 영모각에서.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에서 류씨 문중의 후손을 만났다. 그분은 "마침 오늘 여성이 많으시네요"라는 말을 꺼내시며 과거 종갓(양반)집에서 여성의 위패에 관한 이야기를 상세히 해주셨다. 


 충효당에 들러 사랑채를 보았다. 사랑채 그 자체가 참 아름다웠다. 한참을 충효당을 보다가 이내 영모각으로 향했다. 영모각은 류성룡 선생의 유물이 보존되고 있는 전시관이다. 이 전시관에는 당시 왕으로 하사받은 관직 임명장, 관복, 어사화 등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자아내는 것은 "징비록(국보 132호)" 이었다. 


 나는 조선 징비록을 번역의 저본으로 삼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류성룡 선생의 징비록은 국내보다는 일본에서 먼저 읽혔다. 일본에서는 "조선징비록"이라는 책을 출간했고, 그 당시 일본에 머물던 청나라 학자가 이 책을 수집하여 중국으로 가져갔다. 이후로 일본과 중국에 널리 읽히기 시작했다. 징비록 번역본을 읽고 있으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당장 망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리만큼 긴박하고 엉망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손이 읽어도 답답한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류성룡 선생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백성들은 일본 군사들의 손에 죽어 나가고, 왕은 피난 길에 있으며, 도움을 청해 국내에 들어온 명나라 장군들과 그 휘하는 제멋대로였다. 그나마 전쟁에 임하는 군사들은 제때 밥을 먹이기가 힘들었고 조선 국토를 여러모로 관리 해야 했던 류성룡 선생은 기록에 의하면 울분이 터져 눈물을 보였다고 하니 이쯤 되면 얼마나 힘들었을지 말하면 입 아플 것이다. 그것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준비하자는 그 마음에 이 엄청난 책을 만들어냈으니, 가히 대단하다.


 사실, 영모각을 여유롭게 이곳을 둘러보지 못해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 기회에 개인적으로 가서 천천히 둘러볼 계획이다. (안동이 이토록 재미있는 도시일 줄이야!)






Canon | Canon EOS Hi | 1/30sec | F/9.0 | 18.0mm | ISO-400


강바람과 물소리가 선명한 이 곳, 겸암정사

 부용대에 올라 하회 마을을 둘러보았다. 부용대에서 마을을 바라보니 과연 河回(하회)였다. 구불구불한 강이 기가 막히게 마을을 둘러 감싸고 있었다. 겸암정사를 둘러보고 나오던 길의 부용대는 저녁이 시작되기 직전, 노을이 빨갛게 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아직 그 멋진 노을을 카메라에 담을 수준이 되지는 않지만, 사실, 노을은 사진에 담아두어도 그대로 본 것만 못하다. 강을 둘러싼 마을과, 저 멀리 보이던 능선 그리고 붉은 빛은 그 자체로 환상적이었다.


 부용대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나서 겸암정사로 향했다. 옥연정사로 가고 싶었으나, 현재 길이 막힌 상태다. 겸암정사는 류성룡 선생의 맏형인 류운룡 선생이 1564년에 지었다. 류성룡 선생은 살아 생전, 임진왜란을 수습하고 자신이 높은 관직을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큰 형님 덕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만큼 형 또한 똑똑하고 청렴하며 예가 바르다고 소문나있었던 인물.


 겸암정사에 올라가 낙동강을 바라볼 수 있다. 생각보다 낙동강의 물소리가 겸암정사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내가 방문했던 날씨가 매우 추운 날씨였지만, 여름이면 시원한 강바람 덕에 에어컨은 필요 없는 명당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7, 취재 투어 2, 안동 고택에서 하룻밤과 봉정사 (feat. 안동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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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017.12.27 21:36 답글 | 수정/삭제 | ADDR

    비밀댓글입니다

  • 앨린 2018.01.17 14:46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글 읽으면서 안동이 흥미로워지네요. 글 잘 쓰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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