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한민국/대구

대구 : 보물로 지정된 담장이 있는 도동서원 (대구시티투어)

by 러블리 앨리스, 호텔&여행 블로거 2014. 1. 4.
728x90
반응형



2013년 12월 여행

추운 겨울날, 대구로 여행을 떠났다. 열심히 돌아다닌 덕분에 다리가 피곤하지만 내 마음과 눈으로 담아두었던 멋진 대구의 경치는 지금도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궁금했던, 우리나라의 5대 서원중 하나인 "도동서원"에 다녀오고나서는 조선시대의 자부심이 느껴져서 굉장히 기분 좋은 곳이었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여전히 그 시대를 간직하고 있던 도동서원의 모습은, 비록 겨울이기에 푸르름을 느끼기에는 부족했어도, 그 자체로 아름다웠으니까. 별거 아닐 수 있는 담장 하나하나에도 뜻과 기품을 담고, 건물 구석구석 혼을 담아둔 손길들은 지금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큰지도보기

도동서원 / 문화유적

주소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35번지
전화
053-617-7620
설명
조선5현의 수장인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모신 서원




대구 : 달성, 도동서원으로 갑니다!

대구시티투어버스는 대구의 반월당역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정문에서 출발했다. KTX를 타고 열심히 아침부터 달려간 나는 또 한번 대구시티투어버스를 타고 달성, 도동서원을 향해서 달렸다. 약 45km의 먼 거리이기에 차는 필수! 일반 버스가 다니긴 하지만, 교통이 편리한 편은 아니라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이렇게 대구의 시티투어버스를 활용할 수 있어서 한견 편하긴 했다!




아침일찍 일어나서 대구로 가는 KTX를 타고 다시 내려서 대구시티투어버스를 탔다. 차로 이동해서 약 1시간 거리는 가까운 거리는 아니죠~ 설레임으로 시작했던 버스탑승은 중간중간 졸음을 친구삼아 정신없이 지냈다. ^^;;





달성, 도동서원 : 400년 된 은행나무

시티투어를 신청하고 다녀왔는데, 왠걸~ 나를 포함해서 5명이 신청했다! 아무래도 대구여행으로 치면 겨울은 비수기이다보니 사람수가 적고 보통 봄과 가을에 신청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씀해주시던 해설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고래를 끄덕였지만 그래도 나를 포함해서 5명 뿐이라니.


대구시티투어를 신청하면 단돈 5천원으로 넓직한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이곳저곳을 여행할 수 있으며, 오디오 가이딩이 아닌, 풍부한 해설을 하실 수 있는 해설사님이 동행해준다. 진짜 진짜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함. 이 모든 게 단돈 5천원! 짱짱! 이날 첫번째 장소는 도동서원이었다. 딱 도착했는데, 와~ 넓은 잔디에 저 멀리 서원의 건물이 보였다.



2007년 10월 10일 사적 제488호로 지정된 달성, 도동사원


다소 추웠지만 해설사님의 설명으로 도동서원에 대한 이야기는 펼쳐졌다. 내가 갔을 당시에도 끊임없이 보수 중이었다. 4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멋진 모습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 당시의 우수한 건축기술과 더불어서 후손들의 끊임없는 관심 덕분일지도!

조선시대 교육장소로서 흔히들 잘 알고 있는 서당, 그리고 향교가 있다. 서당은 초등교육과 향교는 중등교육을 담당하던 곳. 그와 달리 서원은 그 지역 자치기구 역할 및 사당역할 그리고 동시에 지방사립기관으로서 중고등교육을 담당하던 곳이다.


보통 서원이라고 하면 소수서원을 가장 많이 떠올린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알려져있으니 대다수의 분들이 서원하면 소수서원을 떠올리기에 충분할 듯 싶다. 사실 5대 서원으로는 <영주 소수서원>,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안동 병산서원>으로 알려져있다. 현재 우리네 중고등학교의 건물들이 완전 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구조를 띄고 있는 것처럼, 각 지방의 많은 서원들의 건물의 구조역시나 비슷하다. 서원이 가지고 있는 건물 위치는 학생들과 강학을 하는 스승이 활동하는 공간이자, 사당으로서 역할을 해야했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띈다.





도동서원에 들어가기 전에 그 앞에 자리하고 있는 은행나무를 만났다. 그 크기아 얼마나 큰지 왠만한 거리에서는 내 카메라로 다 담을 수가 없을 정도! 지금은 겨울이기에 모든 잎들이 없는 가지만 드러난 나무이지만 이 가지만 보더라도 얼마나 웅장하고 멋들어진 나무인지 파악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가을에 은행나뭇잎이 풍성히 있을 때에는 장관이어서 많은 분들이 출사하러 올 정도라고 하니, 



네이버 이미지 검색 = 도동서원 은행나무  http://2url.kr/abEz


네이버 이미지에서 도동서원 은행나무라고 검색하니 이렇게 예쁜~~! 노란 색상의 은행나무를 볼 수 있다. 가을에는 꼭 들러보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정도!




은행나뭇잎이 없는 가지만 봐도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수령이 400년이 된 은행나무는 그 동안 수 많은 풍파를 견디고 지금까지 굳건히 도동서원 앞을 지키고 있다. 김굉필 외증손이자 이황선생의 고제인 정구선생님이 도동서원이 건축될 당시에 기념 식수한 것이라고. 도동서원이 김굉필 선생님을 배향하는 서원이니 그 의미가 다 특별하다.






도동서원 전면에 위치한 많은 비문들이 있다. 누군가를 기리거나, 어떠한 업적이나 그 상황을 기록한 사적비부터 거북이 등 위에 있는 신도비등이 있다. 신도비인지, 사적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비문 중 하나의 글의 일부가 유명한데, 그 글귀를 정확히 기억을 하지는 못하나, 그 내용은, 

<남을 비방하는 자는 입에 피를 머금고 말하는 것과 같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혀 안에 도끼가 들어있다는 옛 말처럼, 입을 함부로 놀리고, 그 입으로 남을 헤하려는 자에게 우리 선조들은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곤했다. 이는 학문을 하는 자들에게나,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똑같이 적용되는 인간만사의 가장 기본적인 예의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달성, 도동서원 : 수월루

도동서원에 들어가려면 먼저 반기는 것은 바로 "수월루"다. 수월루는 도동서원이 건축될 당시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조선말기에 증축된 것인데, 유생들이 지내는 공간 중 하나다. 지금으로 치면 라운지처럼 휴식을 취하거나 독서를 하는 장소로 이용했다고, 이 수월루에서 바라보는 낙동감이 참으로 아름답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수월루 정도의 높이에서 바라보는 도동서원의 앞은 멋진 낙동강과 주변의 멋진 경치가 어우러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치열한 학문을 하다가 잠시 자신을 바라보는 곳으로도 쓰였을 것이고, 누군가의 시원한 휴식처로, 누군가의 깊은 학문을 도와주는 독서가 이루어지던 곳으로 쓰였을 이 수월루. 왠지 수월루와 비슷한 시선에서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개운해지는 기운을 얻게 되는 것 같았다.




달성 도동서원 : 환주문

수월문을 통해서 들어가면 환주문으로 가는 돌 계단을 만날 수 있다. 도동서원에서 만난 돌 계단은 참 소박하니 아릅답다. 딱딱, 정확한 수치로 잘라놓은 돌이 아니라, 매우 둥글둥글하면서 어찌보면 얼기설기한 느낌으로 잘려진 돌인데 제 위치에 딱딱 맞았다. 각 돌마다 모양이 다르고, 그 크기고 다른 듯 한데도, 잘 맞다니. 신기했다. 환주문의 의미는 주인을 부른다는 것인데, 대문에서 주인을 부르는 문이라는 것이 매우 인상적인 이름인 듯 싶다.




이 환주문은 단지 대문으로만 보고 끝내면 안된다. 환주문이 가지고 있는 모양부터 그 의미까지가 상당히 멋스럽고 옛스럽다. 사모지붕이라고 해서 정사각형 모양을 가진 지붕위에는 왠 절구모양을 한 항아리가 뒤집혀져있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윤기 반짝반짝 나는 것이 예쁘기도 하고 귀여워보이기도 한다. 선비들의 갓쓴 모양을 따왔다고!

환주문은 크기는 작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숙여야만 입장이 가능할 만큼 높이가 크지 않은데, 갓을 쓴 선비들이 예의를 다하라는 의미로 허리를 구부려야만 입장할 수 있는 크기로 작게 만든 게 그 이유다. 왜냐하면 환주문 바로 정면에 중정당이 있기 때문.





환주문의 사모지붕 아래를 보면 특이점이 있다. 일반적인 첨차의 디자인과 약간 다른데 보통의 첨차는 십자가 모양으로 짜여진 형태를 말한다. 조선시대 건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형태의 목조짜임새인데, 그 목조 짜임새의 아래에 연꽂 모양의 형태를 조각했다.

보통의 서원들은 볼교적인 색채를 전혀 띄지 않는 것에 비해서 도동서원은 이런 작은 곳곳에서 불교적 색채를 만날 수 있다. 굉장히 특이한 형태. 그런데 가만히 보니 연꽃이 예뻤다. 이 문양은 400년전에 만들었을 텐데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게 신기했다.





꽤나 선명하게 새겨진 연꽃 문양








특이하게도 도동서원의 담장은 보물 305호로 지정되었다. 모르고 보면 쉽게 지나쳤겠지만 이유를 알고보니 담장이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그 어떤 담장보다 음양의 조화를 잘 이루고 있고, 담당에 쌓아둔 그 흙과 기와의 갯수도 음양"오"행을 의미하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물론 지금도 꾸준히 보수를 하고 있지만 거의 40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다고 하니 기술력에 우와~라는 소리가 자연스레 나올정도! 다른 담장과 달리 수막새가 들어가있고, 암키와(일반저으로 암기와라고도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암키와라고 한다.)와 흙으로 5단층을 만들어주었다는 점. 이 모든 것이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별거 아닐 수도 있는 부분에 충분한 의미를 담고 그 안에서 수 많은 걸출한 유생을 배출시켰을 이 서원이 멋져 보였다.





달성 도동서원 : 강학영역

도동서원안에 들어와서도 해설사님의 넉넉한 설명이 시작된다. 도동서원을 바라보고 있는 낙동강을 인해서 용머리를 둘 수 밖에 없었던 것부터 시작해서 각각의 유색들이 기거했던 기숙사와 중정당이 가지는 의미, 그리고 중정당 뒤에 위치한 사당의 의미까지 상세한 설명이 무척 좋았다. 그리고 이날 나를 포함해서 총 5명의 관광객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그룹 덕분에 지체되는 시간도 없었다는 것도 좋았다. ^^




혹시 해설사분과 함께하지 못하는 도동서원이라고 할 지라도, 이렇게 도동서원 안에 설명을 상세히 기록해놓은 표지판이 있어서 읽고 지도를 바라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지도를 자세히보면 도동서원의 모습인데, 중정당과 거인재&거의재 그리고 장판각 그리고 사당으로 이루어진 것이 서원의 기본적인 구조다. 어느 서원을 가나 약간의 방향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이와 비슷하다. 현재는 "학습"또는 "학업"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조선시대에서는 "강학"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나도 처음에 이 단어가 참 낯설었는데, 강학(講學)이라는 말의 "강(講)"은 독서와 풀이를 의미한다. 단순한 학문을 떠나서 스스로 풀이하고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담아서 공부하던 조선시대의 학습 방식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강학영역>이라고 해서 학습장소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기거하던 기숙사도 역시나 포함이 된다. 그래서 작지만 비좁은 기숙사가 한 눈에 보였다.



이 곳이 중정당. 강학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중정당이 가지는 의미응 매우 크다. 그래서 그런지 중정당 곳곳에 배치된 건축학적 의미는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총 정면 5칸, 측면 2칸 반으로 구성되어있는 중정단은 그 무엇보다도 기단이 아름답다고 한다. 다른 서원에 가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기단내의 다양한 돌 모양과 색상이라든지, 기단내에 있는 용머리와 다람쥐 문양은 정말 특이했다.





기숙사 공간은 중간에 중정당을 기준으로 양옆으로 거인재와 거의재로 나뉜다. 거의재에는 아궁이가 있는데, 서재로서도 활용했지만, 하급생들이 지내던 기숙사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아궁이가 없는 쪽은 상급생들이 주로 지내던 공간이었다고 한다. 인(仁)과 의(義)라는 단어를 활용해서 명하게 된 이유는 맹자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맹자 양혜왕 상에 ‘왕이 맹자에게 나라를 이롭게 해주기를 바라자, 이利보다는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이다. 인을 아는 사람은 그 어버이를 버려두는 일이 없고 의를 아는 사람은 그의 임금을 저버리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장소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은 역시나 인상적이었다. 





중정당과 환주문사이에는 이렇게 돌로 이루어진 길이 있다. 그리고 그 길 끝인 중정당 바로 아래에는 무서운 거북이 모양이 있는데, 거북이 눈이 어찌나 인상깊은지 눈길이 갔다. 화가 난 거북이처럼 보이나, 사실은 엄숙함을 지키려는 GUARD의 역할을 하는 거북이였다는 사실!




거북이는 스승이 다니는 이 길을 제자는 함부로 다니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중정당 바로 앞의 이 공간은 유생들이 뛰어다니지 말고, 조신히 다니라고 이야기한다. 강학이라는 이 성스러운 영역에서 행동거지를 조심히 하라는 의미를 담은 거북이는 그래서 쉬지 않고 앞만 바라본다고. 그리고 환주문을 가만히 보면 사람이 지나갈때마다 고개 숙이는 게 보인다. 어느 서원이든, 사당이든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겸손히 지나가도록 높이를 낮추었다고.





중정당의 기단 아래를 보면 색색의 다양한 돌 모양이 보인다. 처음에 음? 돌마다 색깔이 많이 변했나? 세월의 힘인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해설사님이 이 부분을 설명해주셨다. 당시에 도동서원에서 기거할 유생들이 각자 살고있는 지역에 있는 돌을 가져와서 도동서원 건축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한다. 그래서 전부다 색상이 다르고 그 어느 것 하나 같은 모양의 돌이 없는 이유다. 유생들의 마음을 딛고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400녀전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중정당이 정말 멋져보였다.




기단 아래에 보면 이렇게 용머리와 다람쥐가 보인다. 다람쥐 모양이 약간 두루뭉술하지만, 다람쥐가 확실하단다 ㅎㅎㅎ 다람쥐는 길함을 나타내는 동물이다. 그러고보면 은근 우리 조상들이 사랑했던 동물 중 하나인 것 같기도. 그리고 합을 위해서 한 쪽은 올라가는 다람쥐, 한쪽은 내려가는 다람쥐로 쌍을 맞춘 것도 귀여웠다.


용머리에 관한 이야기는 많다. 원래 기단 아래에는 4마리의 용머리가 있었는데, 1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3개는 도둑맞았다고. 그래서 가만히 보면 4개 중에서 1개 빼고 나머지 3개가 색상이 같은데, 이는 후세에 새로 만들어진 용머리여서 그렇다고 한다. 용머리는 낙동강을 앞두고 있는 도동서원쪽으로 홍수로 범람하는 일이 없도록 지켜달라는 의미에서 용머리를 두었다.






중정당 내부를 보면 역시나 그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잘 보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환주문을 통해서 들어서자마자 오래된 목조건물냄새, 미세한 한지냄새등이 느껴졌다. 중정당앞에 있는 도동서원이라는 현판을 사액봉행을 재현하는 행사가 2013년에 있었다. 사액봉행은 단지 현판을 받는 의미가 아니라, 임금으로부터 서원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더 컸다. 도동서원이 처음부터 "도동서원"이라고 사액받은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비슬산 동쪽 기슭에 있다고 해서 "쌍계서원"이라고 사액을 받았고 이후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가, 지금의 사당자리에 보로동서원이라고 불리었다 이후 선조 40년에 "도동서원"이라는 사액을 받게 되어서 이후로 도동서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니 그 이름이 다양했다. 




도동서원 사액봉행 재현 뉴스







도동서원의 중정당을 자세히 보면 기둥마다 하얀색 한지가 보인다. 이게 좀 특이했다. 다른 서원을 가본 적이 없기에, 원래 서원은 이런 한지를 붙였던가?라는 의문이 있었지만, 해설사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충실히 설명해주셨다.







성균관 대성전에 모셔지고 있는 위패는 한훤당 김굉필,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일두 정여창, 퇴계 이황이다. 동방이라고 불리우는 우리나라(조선)에서 뛰어난 현인들 5분 중에서 그 중에서 으뜸이라는 김굉필을 기리기 위한 곳이라는 표시를 한지를 두르게 된거라고. 그만큼 도동서원의 자부심이랄까. 존경이랄까!

동방5현은 이렇게 동방에서 5분의 현인들을 말하며, 원래는 동방4현이었는데, 이후 퇴계 이황의 제자들이 퇴계 이황을 넣고 난 뒤부터 동방5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굉장히 소박하다~ 라는 인상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단청덕분이었다. 그러고보니 중정당의 처마를 보니 심플한 나무 모습 그대로...! 보통 일반 살림집을 제외하면 단청이 화려하게 꾸며져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동서원의 중정당은 단청이 없이 깔끔 그대로였다. 처마에 어떠한 꾸밈도 없이 단청작업도 없이 그대로 둔 이유는 화려하기보다는 청렴하고 검소한 선비의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란다는 마음이 담겨져있지 않을까.





달성 도동서원 : 사당으로 가는 길

중정당 바로 뒤에있는 사당으로 가는 길에 생단과 굴뚝이 보였다. 생단이 뭐지? 싶었는데, 생단이라는 단 위에는 제사에 쓰일 고기를 올려두고, 그 생단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이 고기가 제단에 쓰이기 적합한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제단에 쓰이기 적합한 고기면 "통!" 그러지 않으면 "불통!"







중정당 바로 뒤에있는 사당이다. 모든 서원의 기본적인 구조는 강학영역으로 가장 중요한 중정당 바로 뒤쪽에 사당이 있다. 제향하는 곳이기에 서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현재 사당에는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사당으로 가는 길 역시나 돌로 만들어진 계단이 있었는데, 전형적인 모양이 아니라 각각 다른 모양의 돌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도동서원을 한참을 둘러보고, 수 많은 설명을 들으며 충분히 그 시대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 했다. 재현해낸 건축이 아닌, 당시의 건물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는 후손들의 노력과, 그 당시의 우수한 건축기술 덕분에 후손들 또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만나볼 수 있다는 반가움이 있는 곳이었다.

소학을 좋아해서 소학동자라고 불리었던 김굉필 선생님은 동방5현으로 문묘에 배향되어져서 조선의 성리학의 정통 계승 인물로 인정받았다. 그 분을 배향하는 도동서원은 수려한 비슬산과 풍요로운 낙동강 앞에 있어 그 위치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대구 여행을 간다면 다른 곳은 몰라도 도동서원 만큼은 꼭 둘러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